
영화 '영 아담(Young Adam, 2003)'은 알렉산더 트로키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인간의 욕망과 도덕, 책임의 문제를 극도로 건조하고 냉혹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심리 드라마입니다. 스코틀랜드의 운하를 배경으로 떠돌이처럼 살아가는 한 남자가 죽은 여인의 시체를 발견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되지만, 이 영화는 범죄의 진실을 밝히는 데 거의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대신,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인간,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한 존재가 어떻게 일상을 살아가는지를 집요하게 따라갑니다. 주인공 조는 살인 사건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욕망과 안위만을 중심으로 행동합니다. 그는 사랑도, 연민도, 책임도 감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며, 침묵과 회피를 통해 삶을 지속합니다. 〈영 아담〉은 관객에게 불편한 질문을 던집니다. 인간은 반드시 양심을 가져야 하는가, 죄책감이 없는 삶은 가능한가, 그리고 도덕은 개인에게 얼마나 강제될 수 있는가. 이 영화는 설명을 거부하는 방식으로 인간의 윤리적 공백을 응시하며, 끝내 해소되지 않는 불안을 남깁니다.
줄거리 – 죽음을 목격하고도 흔들리지 않는 남자
영화는 스코틀랜드의 회색빛 운하 위를 오가는 바지선에서 시작됩니다. 주인공 ‘조(이완 맥그리거)’는 일정한 거처 없이 떠돌며, 바지선에서 임시 노동자로 일하는 인물입니다. 그는 과거도, 미래도 명확하지 않은 채 현재의 욕망에 따라 살아갑니다.
어느 날, 조는 운하에서 한 젊은 여성의 시체를 발견합니다. 이 장면은 일반적인 스릴러라면 이야기의 중심이 될 사건이지만, 〈영 아담〉은 이 죽음을 거의 무감각하게 처리합니다. 조는 놀라거나 혼란스러워하지 않으며, 경찰에 알리기 전까지도 평소와 다름없는 태도를 유지합니다.
곧 드러나는 사실은, 조가 이 여성과 이미 과거에 관계를 맺은 적이 있다는 점입니다. 그녀는 조의 옛 연인이었고, 죽음 이전에 이미 위태로운 감정과 갈등이 존재했습니다. 그러나 영화는 그 관계의 전말을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 일어났는가’가 아니라, ‘조는 왜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가’입니다.
조는 바지선 주인의 아내 엘라와 관계를 맺으면서도, 그 행위에 대해 어떠한 윤리적 갈등도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의 욕망은 충동적이지만 계산적이며, 감정은 철저히 배제되어 있습니다.
한편, 살인 혐의는 전혀 다른 인물에게 향합니다. 조는 진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침묵을 선택합니다. 그 침묵은 누군가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직 자신의 안위를 지키기 위한 선택입니다.
영화는 조가 어떤 선택을 했는지, 그리고 그 선택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를 명확하게 단죄하지 않습니다. 대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흘러가는 그의 일상을 끝까지 지켜봅니다.
인물 분석 – 공감할 수 없지만, 외면하기도 어려운 존재
1) 조 – 죄책감이 결여된 현대적 인간
조는 이 영화에서 가장 불편한 인물입니다. 그는 악인처럼 행동하지도, 명백한 범죄자로 묘사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점이 이 인물을 더욱 위험하게 만듭니다.
조는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데 방해가 되는 모든 것을 무시하며, 도덕과 책임을 ‘불필요한 감정’처럼 취급합니다.
관객은 조에게 공감하기 어렵지만, 그를 완전히 타자화할 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극단적인 악이 아니라, 아주 현실적인 형태의 무감각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2) 엘라 – 탈출구를 찾으려는 욕망
바지선 주인의 아내 엘라는 조와의 관계를 통해 자신의 삶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그러나 조에게 엘라는 감정의 대상이 아니라, 일시적인 욕망의 충족 수단일 뿐입니다.
엘라는 조에게서 의미를 찾으려 하지만, 조는 그 기대를 철저히 외면합니다. 이 관계는 사랑이 아니라, 일방적인 착취에 가깝습니다.
3) 사회와 주변 인물들 – 침묵을 가능하게 만드는 구조
영화 속 사회는 조의 침묵을 묵인합니다. 진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말하지 않아도, 시스템은 큰 문제 없이 돌아갑니다.
이 구조 속에서 도덕은 선택 사항이 되며, 침묵은 가장 안전한 생존 전략이 됩니다.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 – 도덕은 본능이 아니라 선택이다
〈영 아담〉은 명확한 교훈을 주지 않습니다. 대신, 관객에게 불쾌한 질문을 남깁니다.
① 죄책감이 없는 인간은 괴물인가?
조는 죄책감을 느끼지 않지만, 그렇다고 전통적인 의미의 악인도 아닙니다. 영화는 ‘악’의 정의 자체를 흔듭니다.
② 침묵은 중립이 아니라, 선택이다.
조가 진실을 말하지 않는 순간, 그는 이미 사건의 일부가 됩니다. 영화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태도가 결코 무해하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③ 욕망은 설명되지만,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영화는 조의 욕망을 숨기지 않지만, 그것을 미화하지도 않습니다. 건조한 연출은 오히려 그의 행동을 더 차갑게 보이게 합니다.
④ 정의는 항상 실현되지 않는다.
이 영화에는 통쾌한 폭로도, 도덕적 처벌도 없습니다. 현실과 닮은 이 결말은 관객에게 깊은 불안을 남깁니다.
⑤ 인간은 반드시 양심을 선택해야 하는 존재다.
〈영 아담〉은 말합니다. 양심은 자동으로 작동하지 않으며, 선택하지 않는 순간 사라질 수 있다고.
〈영 아담〉은 보고 나서 마음이 편치 않은 영화입니다. 그 불편함은 영화가 실패해서가 아니라, 정확히 겨냥한 지점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당신이 그의 위치에 있었다면, 정말 다른 선택을 했을 것이라 말할 수 있습니까?”
이 질문은 영화가 끝난 뒤에도 쉽게 사라지지 않으며, 관객의 양심을 조용히 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