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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세 번째 살인> : 멀어지는 진실과 정의

by enjoykane 2025. 1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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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세 번째 살인> : 멀어지는 진실과 정의

 

영화 ‘세 번째 살인(2017)’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연출한 법정 드라마로, 살인 사건의 진실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사실’보다 ‘판결’이 우선시되는 사법 시스템의 본질을 냉정하게 드러내는 작품입니다. 이미 범행을 자백한 피의자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영화는 단순히 범인을 찾는 데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대신 “법은 과연 진실을 판단하는가, 아니면 사건을 정리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변호사 시게모리는 피의자 미쿠미의 진술이 번복될수록 사건의 실체에 가까워진다고 믿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진실에 다가갈수록 법정에서 유리한 ‘이야기’와는 멀어집니다. 이 영화는 명확한 답을 제시하지 않으며, 관객으로 하여금 정의와 진실, 판단과 책임의 의미를 스스로 묻게 만듭니다. 〈세 번째 살인〉은 범죄 영화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실상은 인간과 제도에 대한 깊은 윤리적 성찰을 담은 묵직한 작품입니다.

줄거리 – 자백은 명확하지만, 진실은 끝없이 흔들린다

영화는 공장에서 일하던 남성이 살해되고, 시신이 불에 태워진 채 발견되면서 시작됩니다. 범인은 현장에서 곧바로 체포된 중년 남성 ‘미쿠미(야쿠쇼 코지)’로, 그는 범행을 순순히 인정하며 살인을 자백합니다. 사건은 겉으로 보기엔 매우 단순해 보입니다. 피의자는 자백했고, 증거도 명확하며, 전과까지 있는 인물입니다.

그러나 이 사건을 맡게 된 변호사 ‘시게모리(후쿠야마 마사하루)’는 어딘가 석연치 않은 느낌을 받습니다. 미쿠미는 30년 전에도 살인을 저질러 복역한 전력이 있으며, 이번이 그의 ‘세 번째 살인’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시게모리는 사건을 최대한 유리하게 이끌어 사형을 피하는 것이 목표이지만, 동시에 미쿠미의 진술에서 반복되는 모순을 발견하게 됩니다.

미쿠미는 조사 과정에서 여러 번 진술을 바꿉니다. 처음에는 돈 때문에 살인을 저질렀다고 말하고, 이후에는 피해자의 딸을 보호하기 위해 살해했다고 주장하며, 다시 피해자의 아내가 살인을 교사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진술이 바뀔수록 사건은 점점 복잡해지고, 시게모리는 ‘진실’을 파헤치려 합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일본 사법 시스템에서 중요한 것은 진실이 아니라, “어떤 이야기로 사건을 정리할 수 있는가”입니다.

법정에서 중요한 것은 논리적 완결성, 즉 배심과 판사를 설득할 수 있는 ‘서사’입니다. 진실이 여러 개일 경우, 그중 가장 설득력 있는 하나만이 채택됩니다. 시게모리는 진실을 밝히려 할수록, 오히려 의뢰인을 불리하게 만드는 상황에 놓입니다.

미쿠미는 시게모리에게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집니다. “변호사님은 진실을 알고 싶으십니까, 아니면 이기고 싶으십니까?” 이 질문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메시지이자, 시게모리의 내적 갈등을 압축합니다.

결국 재판은 ‘가장 그럴듯한 이야기’에 따라 진행되고, 시게모리는 자신이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 법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깊은 혼란에 빠집니다. 영화는 명확한 결론을 제시하지 않은 채, 관객을 불완전한 질문의 세계로 남겨둡니다.

등장인물 – 진실을 대하는 서로 다른 태도

1) 시게모리 – 정의를 믿고 싶지만, 제도의 한계를 마주한 변호사
시게모리는 원칙적이고 냉정한 변호사입니다. 그는 법을 ‘정의 실현의 도구’라고 믿고 살아왔으며, 이성적인 판단을 중시합니다.

그러나 미쿠미 사건을 맡으며 그는 점점 혼란에 빠집니다. 진실을 밝히려는 시도는 법정 전략과 충돌하고, 의뢰인의 이익과 정의 사이에서 그는 끊임없이 갈등합니다.

시게모리는 관객의 시선을 대변하는 인물입니다. 그의 혼란은 곧 관객의 혼란이며,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2) 미쿠미 – 진실을 숨기거나 드러내는 방식을 선택하는 남자
미쿠미는 끝까지 이해하기 어려운 인물입니다. 그는 범행을 인정하면서도, 왜 살인을 저질렀는지는 명확히 말하지 않습니다.

그의 진술은 진실일 수도 있고, 거짓일 수도 있으며, 혹은 진실과 거짓이 섞인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미쿠미가 ‘진실이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는 법이 원하는 이야기를 제공하면서도, 동시에 그 시스템을 비웃듯 진실을 흘립니다. 미쿠미는 단순한 범죄자가 아니라, 제도의 모순을 드러내는 거울 같은 존재입니다.

 

3) 피해자 가족 – 법정 서사에서 소외된 존재
영화 속 피해자 가족은 진실을 요구하지만, 그들의 감정은 법정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합니다.

법은 감정보다 논리를, 고통보다 증명을 요구합니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의 진실 역시 하나의 변수로 취급될 뿐입니다. 이 모습은 사법 시스템이 가진 냉혹한 현실을 보여줍니다.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 – 진실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세 번째 살인〉은 범인을 밝히는 영화가 아닙니다. 이 작품은 ‘법이 무엇을 판단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① 법은 진실을 밝히기보다, 사건을 종결짓는다.
법정에서 중요한 것은 모든 사실이 아니라, 판결을 내릴 수 있을 만큼의 이야기입니다. 이 영화는 그 불편한 현실을 숨기지 않습니다.

 

② 진실은 하나일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미쿠미의 진술이 여러 번 바뀌는 이유는, 그가 거짓말을 하기 때문이 아니라 진실이 하나로 고정되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③ 정의는 제도 안에서 언제나 불완전하다.
시게모리는 옳은 선택을 하려 하지만, 어떤 선택도 완전한 정의가 되지 못합니다. 영화는 정의가 언제나 타협의 결과임을 보여줍니다.

 

④ 질문을 멈추는 순간, 판단은 폭력이 된다.
사건을 빠르게 규정하고 결론을 내리는 것은 편리하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진실이 사라집니다. 영화는 끊임없이 질문할 것을 요구합니다.

 

⑤ 인간은 진실보다 이야기로 설득된다.
법정에서 승리하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 가장 그럴듯한 이야기입니다. 이 사실이야말로 이 영화가 던지는 가장 불편한 진실입니다.

 

〈세 번째 살인〉은 관객에게 답을 주지 않습니다. 대신 불편한 질문을 남깁니다.

“당신은 진실을 알고 싶습니까, 아니면 누군가에게 책임을 묻고 싶습니까?”

이 영화는 범죄 영화의 결말처럼 사건을 닫지 않습니다. 오히려 관객의 마음속에서 재판을 계속 열어두며, 정의와 판단, 그리고 인간의 선택에 대해 오래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입니다.